나는 스킨케어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면서 용기 업체와 수십 번 견적을 주고받았다.
브랜드 오너 입장에서 가장 답답했던 건 속도다. 시안을 보내면 답이 늦다. 왜 늦는지는 반대편에 가보니까 알겠다. 담당자가 시안 하나에 반나절을 쓰고 있었다.
시안 → 견적까지의 과정
인디 브랜드에서 카톡으로 시안이 온다. 이미지 한 장. "이런 느낌으로 50ml 용기 500개요."
담당자가 해야 할 일이 시작된다.
이미지를 보고 규격을 파악한다. 높이, 지름, 캡 종류, 소재. 이미지만으로는 정확하지 않다. 다시 묻는다. "캡은 스크류인가요 프레스인가요?" "지름이 몇 mm인가요?" "소재는 유리인가요 PET인가요?"
왕복이 3번은 된다. 많으면 5번.
규격이 확인되면 기존 금형과 매칭한다. 엑셀 파일을 열어서 비슷한 규격을 찾는다. 정확히 맞는 게 없으면 커스텀이다. 커스텀이면 견적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과정이 시안 한 개에 반나절이다.
병목 1: 시안과 규격의 언어가 다르다
브랜드는 "이런 느낌"으로 말한다. 용기 업체는 "높이 120mm, 지름 40mm, PE 소재, 스크류 캡"으로 말한다. 이 번역을 사람이 하고 있다.
번역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다. "이런 느낌"을 잘못 해석하면 견적이 틀어진다. 나중에 "이 가격이 아닌데요"가 된다. 되돌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
병목 2: 소량 커스텀이 대량과 같은 공수
500개짜리 소량 주문이나 50,000개짜리 대량 주문이나, 규격 확인 → 금형 매칭 → 견적 산출 과정은 동일하다. 매출은 100분의 1인데 공수는 같다.
인디 브랜드 문의가 늘어날수록 담당자가 매몰된다. 정작 대량 거래처 대응이 느려진다. 작은 건에 치여서 큰 건을 놓치는 구조다.
병목 3: 포맷이 제각각
카톡으로 오는 시안, 이메일로 오는 PDF, 인스타 DM으로 오는 이미지. 포맷이 다 다르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다. 담당자 머릿속이 시스템이다.
화장품 OEM, 견적 문의가 카톡으로 폭주할 때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패턴이다. 채널이 분산되면 누락이 시간 문제다.
자동화 적용
해결은 복잡하지 않다.
규격 자동 매칭
용기 규격 DB를 만든다. 높이, 지름, 캡 종류, 소재, 용량별로 구조화한다. 브랜드가 기본 스펙을 입력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매칭 가능한 금형을 찾아준다. 매칭이 안 되면 커스텀으로 자동 분류된다.
"이런 느낌"을 규격으로 번역하는 과정이 사라진다.
견적 자동 산출
규격이 확정되면 수량, 소재, 후가공에 따라 자동으로 견적이 나온다. 엑셀을 열 필요가 없다. 조합이 바뀌면 실시간으로 재계산된다.
문의 통합
어떤 채널에서 들어오든 하나의 시스템으로 접수된다. 담당자는 한 곳만 보면 된다.
결과
시안에서 견적까지 반나절이 10분으로 줄어든다. 소량 문의에 담당자가 매몰되지 않는다. 대량 거래처 대응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브랜드 오너로서 용기 업체에 시안을 보내고 3일을 기다린 적이 있다. 답이 안 와서 다른 업체로 갔다. 그때 이탈한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였다.